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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의방유취 란?

빛나는사람 2019. 6. 15. 12:49

의방유취-

조선 세종 때 왕명으로 편찬된 동양 최대의 의학사전 

266권 264책. 세종은 조선의 자주적 의학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1433년(세종 15)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을 완성한 후, 다시 한방 의서들의 유취(類聚)를 편집하기 위하여 집현전(集賢殿) 부교리(副校理) 김예몽(金禮蒙)과 저작(著作) 유성원(柳誠源) 등에게 명하여 의방(醫方)을 수집 편찬케 하였으며, 뒤에 다시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김문(金汶) ·신석조(辛碩祖)와 부교리 이예(李芮), 승문원(承文院) 교리 김수온(金守溫), 의관(醫官) 전순의(全循義) ·최윤(崔閏) ·김유지(金有智) 등에게 편찬케 하고, 안평대군 용(瑢)과 도승지(都承旨) 김사철(金思哲) 등에게 감수케 하여 1445년(세종 27)에 완성하였습니다.




처음 365권으로 편성하였으나, 그 후 다시 산삭교정(刪削校正)하여 총 266권 264책으로 정리 축소되었다. 그러나 곧 인쇄되지 못하고, 문종 및 세조 때까지 정리 ·축소를 계속하다가, 1477년(성종 8) 5월 한계희(韓繼禧) ·임원준(任元濬) 등이 30질을 인쇄 출판하여, 내의원(內醫院) ·전의감(典醫監) ·혜민서(惠民署) ·활인서(活人署) 등 관계 관아에 반포하였습니다. 내용을 보면 모든 병증(病症)들을 91종의 대강문(大綱門)으로 나누고, 각 문에는 먼저 그 문에 해당되는 병론(病論)을 들고, 모든 약방(藥方)들을 그 출전(出典) 연대순에 따라 열기하였습니다.


그 방문(方文)의 인용도 방서(方書)의 연대 전후와 문자의 중출(重出) 및 이동(異同)에 따라 그 아래에 자세히 주해(注解)를 가하였다. 더욱 각 방서들의 원문을 그대로 질서정연하게 유취편입(類聚編入)하였으므로 각 병문(病門)에 대한 고금의 약방들을 원문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여기에 분류된 병문들은 분류 방법에 있어 병증을 중심으로 한 것과 신체(身體)의 부위를 본위로 한 것이 섞여 있어, 각 분과별로 계통적인 지식을 밝히기는 어려운 점도 있으나, 한편 근세 임상의학의 각 분과(分科)들이 거의 포괄되어 있습니다.


인용된 서적은 한(漢) ·당(唐) 이래로 명조(明朝)에 이르기까지 164종의 고전 의방서가 수록되어 있어, 이 중에는 오늘날 그 원산지인 중국에서도 이미 망실된 것 40여 부나 들어 있습니다. 처음 30질이 나온 후 재간되지 못하다가 임진왜란 때 대부분이 없어지고,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약탈해 간 12책이 없는 252책 1질(帙)이 일본 센다이[仙臺] 의사 구토가[工藤家]에 오랫동안 보관되었다가, 그 후 다시 다끼 모토후미[多紀元簡]가 주재하는 사이슈우칸[齋修館]을 거쳐 현재 일본 궁내성도서료(宮內省團書寮)에 남아 있습니다.





다키는 이 책을 살펴보고 보기 드문 비질(秘帙)이며 크게 유용될 수 있는 저서라고 칭찬하였고, 1852년(철종 3), 에도[江戶]시대 의관(醫官) 기타무라 나오히로[喜多村直寬]가 10년을 들여 목활자(木活字)로 재간(再刊)하였습니다. 그 후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이 성립될 때 일본으로부터 예물의 하나로 일본 재간본 2질이 한국에 헌납되었습니다.


처음 약탈해 갔을 때 12책이 결본되었던 것을 기타무라는 원서의 형식에 따라 다시 보충하여 원간본의 권수와 일치되는 완본(完本)을 인쇄 출판하였으며, 2질 중 한 질은 장서각도서에 보관되었으나 낙질(落帙)이 되었고, 또 한 질은 전의감(典醫監) 홍철보(洪哲普)에게 하사되었는데 현재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었다. 1965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11책으로 간행되었습니다.